대학원 공부&연구 이야기

논문을 쓴다는 것, 전문가가 된다는 것.. [인간의 인간적 활용] by 노버트 위너

윤크라테스 2019. 8. 4. 09:00

 

[인간의 인간적 활용] by 노버트 위너

 

노버트 위너(1894~1964, 미국의 수학자이자 전기공학자) '사이버네틱스'의 창시자입니다. 사이버네틱스의 간략한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 책은 사이버네틱스에 대한 정의와 다양한 방면에서의 설명을 담았습니다. 

 

사이버네틱스, cybernetics
생물의 자기 제어(自己制御)의 원리를 기계 장치에 적용하여 통신·제어·정보 처리 등의 기술을 종합적으로 연구하는 학문 분야. 제2차 세계 대전 후 대두한 것으로 미국의 수학자 위너(N. Wiener)에 의하여 창시됨. 인공두뇌의 실현과 오토메이션의 개량을 목적으로 함. 인공두뇌학. - 출처: 구글 사전

 

이 책은 1950년대 발간된 책입니다. 그러나 현재 기술 변화의 방향성을 볼 때 기술적인 내용, 교육, 산업혁명과 관련된 사회의 변화 등 지금 참고할 수 있는 내용이 많았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박사 학위 논문, 전문가의 책무성에 대한 이야기를 정리해볼까 합니다.

 

위너 박사는 이 책의 서두에 "나는 사이버네틱스를 정의하면서, 커뮤니케이션과 제어를 한데 묶었다"라고 말했습니다. 의미 있는 커뮤니케이션의 관점에서 논문을 쓰는 것, 전문가의 메시지는 어떤 느낌인지 살펴보겠습니다. 

 

만일 그 논문(박사 학위 논문)이 사실상 그렇게 압도적인 작업이 아니라면, 적어도 창작의 작업을 향해 열정적으로 나가기 위한 관문이라는 의도를 갖고 있어야 한다. (...) 그러나 극소수를 제외한 거의 대부분에게는 이러한 일들이 열에 아홉은 딱히 설득력이 있는 이유 없이 수행되는 형식적인 작업을 통해 이루어진다.  (163-164쪽) 

 

위의 글은 박사과정생들이 형식적으로 학위 논문을 쓰는 것에 대해 개탄하는 내용입니다. '실적을 위한 논문', '형식적인 논문'을 쓰는 것은 수십 년 전에도 만연했었나 봅니다. 그냥 논문도 아니고, 무려 박사 학위 논문인데도 그렇게 형식적으로 흘러가는 것에 대해 위너 박사는 매우 안타까워하고 있습니다. 학위 논문을 형식적으로 쓰는 데는 개인적인 이유와 구조적인 이유 등 여러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저는 현재 박사과정생으로서 '형식적인 작업에 대한 안타까움'보다는 '박사 학위 논문을 쓴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가'에 대해 좀 더 초점을 맞춰보려 합니다.

 

위너 박사는 박사 학위 논문을 쓰는 행위에 대해 '적어도 창작의 작업을 향해 열정적으로 나가기 위한 관문이라는 의도를 갖고 있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이 표현이 매우 좋았습니다. 박사 학위 논문에 대해 몇 년간의 대학원 생활에 대한 '끝맺음'이 아니라 새로운 연구의 세계로 향하는 '시작'이라는 의미가 전해져서입니다.

 

박사 학위 논문의 주제에 대해 '나와 세상을 연결시켜 주는 나만의 출입문'라는 느낌이 드는데, 이는 박사과정 때 주제를 선정하고 연구할 때 어떤 마음이어야 할지를 고민하게 합니다.  '나만의 출입문'으로서 박사 연구 주제는 매우 구체적입니다. 이전에 비슷한 것이 있었을지 몰라도 같은 것은 없습니다. 오직 나만이 통과할 수 있는 매우 섬세한 맞춤형 문입니다. 즉 박사과정과 학위 논문을 쓰는 것은 기존에 없던 그 문을 스스로 만들어가는 작업입니다. 그러니 그 일을 해내는 당사자는 얼마나 막막하고 고생이 될지 안 봐도 뻔합니다. 위너 박사는 그 과정이 대학원생 각자에게 보다 의미있기를 바랐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을 거쳐서 당당하게 의미 있는 메시지를 커뮤니케이션 하는 전문가가 되기를 바랐을 것입니다.

 

가끔 나를 화나게 하고 언제나 나를 실망시키고 탄식하게 하는 것은, 이름난 학교의 교육 과정에서조차 독창성보다는 파생적인 것을 더 선호하고, 새롭고 강력한 것보다는 언제나 수없이 복제될 수 있는 관습적이고 얄팍한 것을 더 선호하며, 보편적인 새로움과 아름다움보다는 제한된 범위와 방법을 사용한 무미건조한 정확성을 더 선호한다는 점이다. (165쪽)

 

개인이 노력하더라도 주변 여건에 의한 제약이 존재합니다. 연구를 하는 학생 각자는 이러한 환경 속에서도 자신의 메시지를 찾고 그것을 더욱 분명하게 하기 위해 애써야 자신만의 고유한 메시지를 만들고 지켜낼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가장 힘들고 슬픈 상황은 학생이 자신의 연구 주제를 스스로 선택하지 못하고 주변 분위기나 강요에 의해 선택해야 할 때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위너 박사는 정보는 시간이 흘러갈수록 멀리 전파될수록 흐트러진다고 했습니다.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의미 있고 중요해야 시간과 공간에 따른 흐트러짐을 견뎌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연구 주제는 의미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 주제를 바탕으로 의미 있는 커뮤니케이션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내가 세상을 향해 내보내는 메시지가 세상에서도 의미가 있으려면, 그 메시지는 가장 먼저 나에게 의미 있어야 합니다. 

 

커뮤니케이션할 필요가 없는 커뮤니케이션이 있을 때, 단지 누군가가 커뮤니케이션의 전도사라는 사회적이고 지적인 지위를 얻기 위해서 그러한 커뮤니케이션이 일어 난다면, 그 메시지의 질적이고 커뮤니케이션적인 가치는 무거운 추처럼 급속히 추락하게 된다. (164쪽)

 

이것은 '권위'와 관련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내 메시지에 집중하게 하고 싶다면,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권위가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내가 하고자 하는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한 것인지 여부와 깊게 관련 있습니다. 쉽게 말하자면, 화자가 아무리 지위가 높고 남들이 봤을 때 중요한 사람이라도 자꾸 불필요한 말을 하면 그 사람의 말은 아무도 귀담아 듣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화자가 개인적 권위 등을 이용해 사람들이 자신의 말을 듣게 한다고 하더라도 청자들이 그 사람의 메시지가 '하나마나 한 말'이라고 여기면 겉으로는 듣는 척 할지 몰라도 진심으로 듣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내 말을 듣는지 안 듣는지를 확인하고 싶어 불필요한 말을 계속 하는 것보다는 꼭 필요한 말이 아니라면 침묵하는 편이 오히려 '말의 권위'를 유지하는 데 더 도움이 될 것입니다. 

 

선택된 커뮤니케이션을 자신의 직업으로 삼고 있으면서도 커뮤니케이션할 것이 없는 사람들 때문에 독창성의 뿌리가 뽑히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강력히 저항한다. (165쪽)

 

이 글을 읽으며 지식과 관련된 일을 단지 직업으로만 하는 사람들이 떠올랐습니다. 누구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고민해서 정보를 생성하기보다는 지금까지의 관성에 따라 자신의 입지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을 더 많이 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습니다. 이들은 얼핏 보면 뭔가 있어 보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의 메시지에 대해 계속 갈고 닦고 하지를 않습니다. 한 마디로 공부를 충분히 하지 않거나 심지어 멈추었기 때문에 좀 지나고 나서 보면 그가 하는 말은 자신의 말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들게 됩니다. 여기저기서 들었던 정보를 모아서 자신의 생각인양 말하는 것이지요. 사안에 대해 자문을 구하고 싶고 의견을 듣고 싶은 사람이 된다는 것은 의식적 노력이 필요한 일입니다. 점점 나이가 들어갈수록 제가 되고 싶은 사람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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