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나도 마찬가지로.. [먹고사는 게 전부가 아닌 날도 있어서] - 노지양

윤크라테스 2019. 6. 11. 09:00

[먹고사는 게 전부가 아닌 날도 있어서] - 노지양

 

이 책은 14년 차 번역가인 노지양 씨의 첫 에세이입니다. 이 분이 번역한 책 중에는 제목이 익숙한 책들도 있었습니다. 외국 이름이 아무리 어려워도 익숙한 작가의 이름이 있습니다. 그에 비해 번역하시는 분들에 대해서는 무지했었습니다. 아! 요즘엔 잘 읽히고, '원서의 느낌이 이런 것일까?' 생각하게 번역된 책들을 만나면 다시 책날개를 들추어 번역하신 분을 다시 눈여겨보곤 합니다. 

 

우정을 지키는 힘, 결혼을 유지하는 힘, 문제가 생겼을 때 외면하지 않고 정면으로 바라보고 내 힘으로 해결하려는 힘도 번역을 하면서 조금은 자랐다. 나를 향한 애정도 어쩌면 번역 덕분에 지킬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선택지가 없는데 이런 나라도 안고 가야지 별수 있겠나. 사랑해야지 별수 있겠나. 사랑하면 결과물이 나아진다는 걸 아는데. (85쪽)

 

다른 직업을 가진 분들을 보면 선망의 눈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내 일은 반복적이고 평범해 보이는데, 그 분들의 일은 뭔가 특별해 보입니다. 그분들의 일하는 방식, 일상은 '나와는 뭔가 달라도 다를 것'이란 생각을 합니다. 이 글귀를 읽으며 어떤 일이든 직업이 되면 지켜야 하고, 유지해야 하고, 버텨야 하는 것임을 다시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사랑하면 결과물이 나아진다'는 표현이 참 좋았습니다. '지겨워! 빨리 끝내버릴 거야!!'가 아니라 내게 시간과 에너지가 허락되는 한 사랑하고 또 사랑하여, 그 마음을 담아 다듬고 또 다듬어야겠다 생각했습니다. 

 

 

 

 

 

 

포기하려 해도 포기가 잘 안 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머리가 희끗희끗해져서도, 지방에서 올라와서도 소설 쓰기나 글쓰기 수업을 들으면서 자기보다 한참 어린 선생과 대학생들에게 비판을 받고 또다시 망신을 당한다. 그러면서도 신춘문예에 도전하고 자비출판을 알아본다. 그것이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컸던 시절 더 밀어붙이지 못하고 당장의 생활에 안주한 대가임을 뼈저리게 느끼면서.
그런데 바로 그 '간절함', '포기 안 됨'이 재능일 수도 있다.
끝까지 수업에 나오고 한 장이라도 쓰는 사람들이 언젠가는 자기 이름이 새겨진 한 권의 책을 손에 들게 된다. (96쪽)

 

이 분도 자신의 글을 꼭 쓰고 싶었다고 합니다. 시도했다가 좌절하기를 반복했지만, 어쩐지 놓아버릴 수 없는 '그 무엇'이 있는 사람은 비슷한 사람을 알아볼 수 있습니다. 저는 그런 분들을 알아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분들을 만나면 자신의 상황을 떨치고 일어나서 할 수 없는 사정이 있을지 몰라서, 그 사정 때문에 마음 아파하는 중일지 몰라서 '해 보세요~' 이렇게 가볍게 말씀드리진 못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어차피 하지 못할 상황이라면 정리하세요~'라고 말하는 것이 그분들의 마음의 짐을 덜어주는 길이 아니라는 것도 압니다. 그래서 그저 가만히 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건 그분들의 마음을 들어주는 것, 힘들어도 그 길을 가는 사람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그런 분들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겠지요. 만약 그분들이 원한다면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작업실에서 있었던 2년 반이나 되는 날들보다 이 작업실을 어떻게 얻게 되었는지를 자꾸 되돌아본다. 그 어설프고 우습고 안타까운 날들을 아직까지 상세하게 기억하고 있으며 자꾸 거기에 대해 쓰고 싶다. 
(...) 
우리는 꿈을 사는 날보다는 꿈을 만들던 날들에 대해 늘 할 말이 많지 않은가. 어떤 고생을 했고 어떻게 실패했고 왜 눈물을 흘렸는지 자꾸 말하고 싶어한다. 그 시절을 이상하게도 잊지 못한다. (189)

 

이 글을 읽으며 저도 고생했던 이야기, 뭔가를 극복했던 과정을 무용담처럼 말하곤 한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을 살자'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어려서부터 성취와 성공을 향해 달려야 한다고 배웠고, 항상 뭔가를 이뤄야 한다고 여겼습니다. 그렇게 연습한 기간이 너무 길었던 것은 아닌가 생각합니다. 제 경우에는 사회에서 말하는 '일반적 삶'과는 제법 떨어져 있는데도 그 습관은 쉽게 고쳐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직 과정 안에서 안정을 즐기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제는 정말 과정을 즐기는 연습을 해야겠습니다. 

 

밖에서 보면 10년이 넘는 경력을 가진 베테랑 번역가의 모습은 어쩌면 너무나 추상적입니다. 그러나 그 사람을 가만히 들여다 보면 지켜야 할 일상이 있고, 버텨야 할 시간이 있으며, 이루고픈 꿈이 있습니다. 그런 요소들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번역가라는 삶이 어떤 것일지 궁금하면서도 유사한 삶의 모습에 또 공감하게 되는 책이었습니다.

 

 


여러분의 공감과 댓글은 글쓴이에게 큰 힘과 도움이 된답니다.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