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앎이야기

'산다는 게 뭔가' 싶을 때엔.. [눈이 부시게]

윤크라테스 2019. 7. 23. 09:00

 

이번 휴가에 [눈이 부시게]를 몰아서 보았습니다. 이미 종영을 한지도, 큰 화제가 된지도 오랜지라 결론을 이미 아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좀 시시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했었지만 기우였습니다. 12부작을 아주 엑기스로 만든 드라마였습니다. 그리고 '삶'이라는 주제를 다루는만큼 과정이 아름다운 드라마였습니다. 이제 대부분 결말도 다 아는 상황이니 결말이 포함된 좀 자유로운 소감도 가능할 것 같습니다. 

 

1. 사랑이 많은 사람 '김혜자'

극에서 주인공인 '김혜자'는 사랑이 참 많은 사람입니다. 가족에 대한 사랑도 매우 크고 깊고, 지나가는 어떤 사람을 봐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습니다. 그녀의 사랑에는 조건이 없습니다. 자신을 포함해서 자신 앞에 있는 사람을 매우 애틋하게 바라봅니다. 

 

그런 그녀가 실제로는 매우 팍팍한 삶을 살았습니다. 갑자기 남편을 잃고, 자식도 다리를 다치게 되면서 자신이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할 상황이 되니 표정이 점점 굳어집니다. 마음이 팍팍해지고, 말은 딱딱해집니다. 그랬던 그녀가 알츠하이머로 정신이 온전치 못한 상태가 되면서 70여년 살면서 어쩔 수 없이 장착하고 있던 본래 자신의 모습이 아니던 것들을 모두 놓게 됩니다. 사람에 호기심 많고 관심 많던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갑니다.

 

그녀가 보여줬던 행동들은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용기'였습니다. 그 용기는 '사랑'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세상의 관점에서 보자면 뭘 그렇게 크게 이룬 것도 아니고, 훌륭한 사람이 된 것도 아닐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녀는 자신이 깊이 사랑했던 준하와 자신의 아들, 며느리를 그들 각자의 삶에서 구원했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만났던 사람들에게 세상과의 크고작은 연결고리를 만들어주었습니다. 삶은 과정이고, 그 과정이 사랑으로 인해서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지 보여주었습니다. 

 

 

 

2. 그녀가 정말 되돌리고 싶었던 과거의 사건

삶이란 의도치 않은 사건들로 인해 행복과 불행을 남깁니다. 그녀의 삶에서 가장 큰 행복이자 사랑은 준하였을 것입니다. 그런 그를 시대적 상황이란 이유로 어떻게 손을 써보지도 못하고 잃었을 때 얼마나 슬펐을까요. 그녀가 그를 보내고 했던 '한평생 외로웠던 사람을 혼자 가게 해서 미안해'라는 말에 그녀의 평생의 회한이 담겨있는 듯 합니다. 준하라는 사람과 그의 삶을 사랑으로 바라보고 있었기에 그의 삶이 평생 그렇게 아프고 애달팠을 것입니다. 현실에서는 그의 삶과 죽음에 어떤 것도 할 수 없었기에, 그녀가 만든 세상에서는 기를 쓰고 그를 구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습니다. 

 

그녀가 만든 세상에서 늙어버린 그녀가 준하를 보며 느꼈던 안타까움과 불안감이 드라마의 마지막에서는 이해가 조금 되었습니다.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버려 언제나 젊고 멋진 모습으로 남아 있는 준하에 반해 자신은 점점 나이가 들어갑니다. 게다가 혼자서 살림을 꾸려가면서 옛날의 예쁘고 부드럽던 모습을 모두 잃어버리고 세월에 거칠어진 자신의 생각한다면.. 나중에 자신이 세상을 떠나 그를 다시 만났을 때 영원히 멋진 준하 앞에 늙고 거칠어진 자신이 바로 설 수 있을지, 준하가 기억하던 혜자가 더이상 아닌데, 그런 자신을 준하가 알아볼 수 있을지에 대해 자신이 없었을 것 같습니다. 

 

 

3. 사랑이란, 삶이란

이 드라마를 보며 사랑에 대해, 삶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며느리를 알아보지 못하는 혜자에게 실망하기보다는 '제가 알아보면 되죠'라고 말하는 정은의 말에서 사랑은 '그냥 내가 하면 되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혜자가 평생을 아들을 위해 눈을 쓸었던 것에 대해 '아들은 몰라요'라는 말에 '몰라도 괜찮다'는 대답도 같은 맥락입니다. 사랑하는 아들이 눈에 미끌어지지만 않으면 자신의 목적이 달성된 것이지, 아들이 알고 모르고는 중요하지 않은 것입니다. 상대방에게 이런 마음으로 사랑할 수 있다면 참 좋을 것 같습니다. 

 

준하를 구하러 가서 탈출하는 과정에 우연히 발견한 휠체어 할아버지가 짐이 될 수 있다는 일행의 말에 '우리 나이에 누구나 짐 아닌 사람이 있냐'는 말에서 누구에게나 공평한 인생의 순리에 대해 조금은 알 것 같았습니다. 그와 함께 휠체어 할아버지가 어떤 방에 감금되어 있었던 것은.. 아마도 준하를 고문치사로 이끌었던 그에게 남은 일생은 어쩌면 보이지 않는 감옥과 같았을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 드라마에서 소소한 명언들이 참 많았는데.. 이런 것들도 삶이란 그런 소소한 사랑과 위로로 이루어진 평범한 이야기라는 메시지를 주는 것 같았습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별다를 것 없는 평범한 이야기이지만, 나에게는 매우 특별하고 애달픈 소중한 이야기인 것입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그냥 일반적인 한 사람일수도 있고, 내 이익때문에 함부로 할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내 이야기 안에서는 주인공이고 중요한 인물이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준하의 경우도 당시 공권력을 행사하던 입장에서는 그렇게 아무렇게나 없어져도 티가 안 난다고 여겨질 수 있는 한 사람이었지만, 혜자의 스토리에서는 누구와도 대체할 수 없는 중요한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니 한 사람 한 사람을 어떻게 보고 대해야할지 잘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이 드라마를 보면서 제 감정을 그냥 놓아버렸습니다. 슬프면 울었고, 재밌으면 웃었습니다. 매순간 의도했던 대로,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 것임을 다시 한번 확인하면서.. 삶이라는 게 시간이 흘러가는대로 매 순간에 충실하고, 사랑하고, 진지하게 살면 되는 게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드라마를 쓴 작가도 대단하지만, 대단히 섬세한 연기를 한 배우들도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드라마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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