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앎이야기

교수자와 학습자에게 실망을 좀 덜 하려면..

윤크라테스 2019. 7. 24. 09:00

 

어른이 되면 아이들에게 '뭐라도 개입해야 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마찬가지로 가르치는 사람이 되면 학생들에게 '뭐라도 개입해야 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이러이러했으면 좋겠다'라는 의지를 강하게 가지는 것 못지 않게, 교수자들도 학생들에 대한 이런 식의 통제 의지를 강하게 가지는 모습을 종종 목격하곤 합니다. 그러한 통제 의지가 가장 강하게 드러나는 집단이 어디인지는.... 꼭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잘 알 것입니다. 

 

나보다 어린 사람, 내게 배우는 사람에게 통제 의지를 느끼는 이유는 아마도 나이가 어린 사람은 나이가 많은 사람에 비해, 배우는 사람은 가르치는 사람에 비해 '미성숙하다, 불완전하다'는 인식이 있어서인지도 모릅니다. 우연히 설정된 관계에 의해 상대에 대해 깊이 살펴보지 않고 섣부른 판단을 하게 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이것은 인간에 대한, 학습자에 대한 '기본 가정'과 관련이 있습니다. 

 

이런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 교수자가 바라는 모습으로 학생이 형성되는 것이 교육일까?
  • 교수자가 학생에게 바라는 모습이 과연 그 학생의 인생에 도움이 되고 바람직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 교수자가 만나는 수많은 학생들에 대해 그렇게 통제 의지를 발휘한다고 해서 그게 제대로 효과를 발휘할까?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적어도 제 경우에는 저에 대해 통제 의지를 강력하게 발휘하는 교수자들을 만날 때마다 너무 괴롭고 힘들었던 경험이었음을 기억합니다. 학생에 대한 궁금증이 별로 없으신 교수자들의 일방적인 태도에 대해서는 상처도 많이 받았고, 심리적 반발심이 강하게 일곤 했습니다. 그래서 교수자는 학생에 대해 호기심이 있어야 하고, 자신의 학생에 대해 개입을 할지 말지, 한다면 언제 어떤 방식으로 할지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만난 최악의 교수자는 이런 분들이었습니다. 모든 학생에게 동일한 기준으로 개입하고, 통제가 쉬울 것 같은 학생에게는 강하게 통제하고, 통제가 어려울 것 같은 학생에게는 눈치 보는 사람이었습니다. 때로는 학생을 꺽으려 기싸움 하는 교수자도 종종 만났습니다. 물론 반대로 배울 자세와 태도가 되어 있지 않은 학생들도 많이 만납니다. 

 

어떻게 보면... 동양에서는 오래전부터 신성한 관계라 여겼던 스승과 제자와의 관계가 요즘엔 너무나 희소해진 것 같습니다. 요즘엔 모든 일이 직업화되어서 교수자도 학습자도 일 자체의 의미보다는 직업으로서의 의미가 중요하게 된 지 오래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교육도 가르치는 직업을 가진 사람과 (한동안) 배우는 역할을 가진 사람이 일정 기간 만나 형성하는 인간관계로 바뀐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이렇게 보면 너무 차갑게 보일수도 있겠지만... 좀 달리 생각해보면 어떨까 합니다. 가르치는 직업을 가진 사람 중에서 교육자로서의 의식이 있고 윤리적이고 진지한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저절로 멘토가 되고 스승이 될 것입니다. 또한 현재 배우는 상황에 있는 사람 중에서 학생으로서의 의식과 의지가 있고, 자신이 배우는 것에 대해 진지한 태도로 도야하려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멘티가 되고 제자가 되는 될 것입다. 

 

가르치는 사람이든 배우는 사람이든 그들의 태도를 살펴보면 그들의 의도가 어디에 있는지 조금 더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선생이 왜 그래?', '학생이 왜 그래?' 이런 말을 덜 하게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교수자든, 학생이든 어떤 이익을 위해 자신의 일을 수단으로 삼는 사람에게 크게 속지 않을 것이고, 실망할 상황에 처하더라도 크게 상처받고 좌절하는 일을 피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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