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by 박완서

윤크라테스 2019. 7. 30. 09:00

 

이 책은 박완서 선생님의 노년의 일상과 생각을 경험할 수 있는 산문들입니다. 작가님 말년에 나온 책인데, 글이 담백하면서 매우 힘이 있습니다. 작가님의 글은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서술하실 때에도 소설 속 다른 사람을 묘사하시는 듯 합니다.

 

산문 속 작가님의 어린 시절, 젊은 시절 등등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이가 든다고 해서 정신과 마음이 함께 늙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게 됩니다. 때로는 더욱 또렷이 기억나는 장면들도 있습니다. 삶에서 매우 행복했던 장면도 있지만, 정신적으로 큰 충격과 상처를 준 장면인 경우도 많습니다. 작가님에게는 청소년기 및 청년기의 전쟁통과 아드님을 잃었던 장면이었습니다. 

 

'잘살아보자'는 민족적 여망은 자식도 남편도 가슴에 묻기보다는 통계 숫자 안에 안착을 시켰다. 나 혼자만 당한 일이 아니라는 게 위로가 될 수도 있다는 건 모르지 않으면서도 나는 바로 그 점이 더 괴로웠다. 내 피붙이가 나에게 특별한 것처럼 죽어간 내 피붙이는 각자 고유하고 특별한 자기만의 세계를 가지고 있었다. 그들만의 세계는 함부로 할 수도, 바꿔치기할 수도 없는 그들만의 우주였다. 하나의 생명의 소멸은 그들에게 있어서는 우주의 소멸과 마찬가지이다. 어떻게 몇백만 분의 일이라는 숫자 안에 도매금으로 넘길 수 있단 말인가. 나는 내 피붙이만은 그 도매금에서 빼내어 개별화시키고 싶었다. 몇백만 분의 일이라는 죽은 숫자에다 피를 통하게 하고 싶었다. (23쪽)

 

이 구절이 특히나 인상 깊었던 이유는 저도 나이가 들어가고 있으면서도 저보다 더 먼저 사신 분들에 대해 가지고 있던 고정관념을 일깨워줬기 때문입니다. 저도 모르게 저보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살아온 시대가 다르다는 이유로 그 분들은 지금 사는 사람들과는 뭔가 다른 것을 경험하고, 다르게 느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나 봅니다. 이 구절을 읽으며 어느 시대든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사건은 사람이 죽고 사는 문제이고, 이것은 누구에게나 동일한 크기와 강도의 충격과 슬픔을 안겨주는 것임을 새삼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더 깊이 몰입하게 된 이유는 얼마 전에 본 [눈이 부시게]라는 드라마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평소에도 역사적, 정치적 상황으로 인해 평범하게 살 수도 있는 한 개인의 삶이 좌지우지되는 것에 대한 깊은 슬픔과 안타까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 저에게 시간을 백번, 천번, 만번을 되돌려서라도 살려내고 싶고 구해내고 싶은 한 사람에 대한 마음이 너무 슬프고 안타깝게 느껴졌습니다. 시대적으로 보자면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한 70대 노인이 살아오면서 평생 동안 수천, 수만 번 돌렸을 기억 속 시계가 너무 아팠습니다. 그것과 연결되어 제가 인용한 작가님의 글이 너무나 적절한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며 '젊은 내가 늙은 꿈을 꾸는 건지, 늙은 내가 젊은 꿈을 건지..'라는 [눈이 부시게]의 김혜자 선생님의 독백이 자꾸 떠올랐습니다. 뇌는 생각하는 것을 현실로 믿는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도 같습니다. 그래서 나이가 들어 계속해서 과거를 반추한다면 과거와 현재를 같이 사는 것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관련 글: '산다는 게 뭔가' 싶을 때엔.. [눈이 부시게]

 

내가 함부로 대한 간판장이 중에 진짜 화가가 섞여 있었다는 건 사건이요 충격이었다. 나는 부끄러움을 느꼈고, 내가 그동안 그다지도 열중한 불행감으로부터 문득 깨어나는 기분을 맛보았다. 그리고 나의 수모를 말없이 감내하던 거의 선량함이 비로소 의연함으로 비치기 시작했다. 
(...) 그가 신분을 밝힌 것은 내가 죽자꾸나 열중한 불행감으로부터 헤어나게 하려는 그다운 방법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한참 후의 일이다. 내 불행에만 몰입했던 눈을 들어 남의 불행을 바라볼 수 있게 되고부터 PX 생활이 한결 견디기가 쉬워졌다. (...) 비로소 내가 막되어가는 모습을 그가 얼마나 연민에 찬 시선으로 지켜보아 주었는지도 알 것 같았다.  (264-265쪽)

 

이 구절은 박수근 화백을 추모하는 글인 [보석처럼 빛나던 나무와 여인]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대학생 시절 PX에서 일을 할 때 미국인의 초상화를 그리던 화가들 중 박수근 화백과의 이야기가 상세히 담긴 글입니다. 그 당시 작가님은 전쟁의 충격과 전쟁으로 인해 송두리채 흔들린 가족의 삶을 책임지는 상황이라, 고객을 대신 상대하던 자신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던 PX의 화가들에게 독하게 굴었던 시절이었다고 합니다.

 

그런 작가님에게 어느 날 박수근 화백이 자신이 입선되었던 화집을 보여주던 장면을 서술한 글입니다. 여기를 읽으며 위로를 받았습니다. 훌륭한 사람, 되어진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되어져가는 것이구나, 나도 점차 되어질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남자들은 일자리가 없고, 그 대신 여인들이 두 배로 고달팠던, 그러나 강한 여인들은 결코 절망하지 않고 전후의 빈궁을 온몸으로 감당하고 사는 모습이 그의 선한 눈엔 가장 아름다워 보였을 것 같다. 그래서 오래오래 남기고자 화폭을 돌 삼아 돌을 쪼듯이 힘과 정성을 다해 그린 게 아니었을까. (...) 내 황폐한 마음엔 마냥 춥고 살벌하게만 보이던 겨울나무가 그의 눈엔 어찌 그리 늠름하고도 숨 쉬듯이 정겹게 비쳐졌을까. (266쪽)

 

박수근 화백의 유작전에서 [나무와 여인] 그림을 보고 박완서 작가님이 느낀 소회의 한 구절입니다. 작가님의 말씀을 따라 박수근 화백님을 상상해봅니다. 화백님은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경험하려 지구에 왔는데 하필이면 슬프고 아픈 장면들을 많이 보게 되었고, 그래서 안타까운 마음을 기록의 의미로 그림으로 남기게 되는 어떤 작은 천사처럼 느껴집니다. 선하고 따뜻한 시각으로 세상과 사람을 바라보고 자신이 본 것을 그림으로 남긴 화백님의 모습 찬탄하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를 통해 그 당시 자신의 마음을 되돌아보는 작가님도 본받고 싶습니다.

 

이 책을 읽으며 '내가 만약 더 나이가 들어 70~80대가 된다면?'이란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그 때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나는 내 과거를 어떻게 수용하고 이해할까? 나는 내 삶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게 될까?' 이런 것들에 대한 간접 경험 및 선행 학습을 하게 된 것이라고 할까요?

 

10대를 떠올리는 작가님의 마음은 10대이고, 20대를 떠올리는 작가님의 마음은 20대입니다. 그러다 문득... 현재로 돌아옵니다. 하긴 이미 생각과 마음의 나와 현실의 나 사이 간극이 조금씩 벌어짐을 느낍니다. 기억과 마음은 여전히 젊은데 몸이 늙어가는 이 부조화를 어떻게 수용하고, 조화를 이루어나가면 좋을지는 중년을 넘어서는 모든 사람의 숙제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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