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건투를 빈다: 김어준의 정면돌파 매뉴얼] by 김어준

윤크라테스 2019. 7. 16. 09:00

 

김어준 총수의 [행복론]에 대한 강의에서 이 책이 언급되었습니다. 당연히! 궁금해서 읽어보았습니다. 자그마치 2008년에 나온 책이고, 그 다음 해에 8쇄를 당당히 찍은 책이었습니다. 

 

이 책은 '나, 가족, 친구, 직장, 연인' 5가지 카테고리로 나뉜 상담록입니다. 저는 '나'라는 주제에 꽂혔습니다. 총수에게 상담을 요청한 사람들은 20대인데, 저는 그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데도 읽으면서 격하게 공감할 내용들이 많았습니다. 그 중에서 다음의 내용이 정말 크게 다가왔습니다. 

 

당장은 이것부터 명심하시라. "당신만 각별하진 않다는 거."

 

두둥!!! 

지금까지 저는 반대로 여기고 살아왔기에, 이 말이 크게 다가왔습니다. 

 

자신의 상황만이 각별하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자존감이 무르다는 방증이다. 자존감이 든든한 자는 자신이라고 해서 특별할 게 없다는 걸 인정한다. 특별하지 않다는 게 스스로 못나거나 하찮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에게 무심하다. 누가 나를 무시하지는 않는지 사주경계하느라 에너지를 쓰지 않는다고. (32쪽)

 

이 말에 더 첨언할 말이 없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모습이 딱 이랬기 때문입니다. 누가 나를 무시하지는 않는지, 누가 나를 해치지는 않을지 얼마나 열심히 나를 지키려 했는지 모릅니다. 한 마디로 '자존감이 무른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자존감이란 그런 거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부족하고 결핍되고 미치지 못하는 것까지 모두 다 받아들인 후에도 여전히 스스로에 대한 온전한 신뢰를 굳건하게 유지하는 거. 그 지점에 도달한 후엔 더 이상 타인에게 날 입증하기 위해 쓸데없는 힘을 낭비하지 않게 된다. 누구의 승인도 기다리지 않고 그저 자신이 하고 싶고, 재밌어하는 것에만 집중하게 된다. 다른 사람 역시 왜곡 없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28쪽)

 

'승인'이라는 말에 또 확 집중이 되었습니다. 최근에야 저는 제 삶에 얼마나 많은 다른 사람의 '승인'을 기다리고 있는지 깨달았습니다. 타인의 승인을 기다린다는 건 제 삶에 대한 그 사람의 권한을 인정한다는 의미입니다. 평가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제게 하는 몇 마디 말에 제가 얼마나 크게 신경을 쓰고 있었는지, 그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제 인생에 관여하도록 하고 있었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을 알게 되면서 한편으로는 허탈하고, 또 한편으로는 짜증이 났습니다. 저에게도 짜증이 났고, 제 인생에 멋대로 관여하려 하고 저를 통제하려는 사람들의 시도에도 짜증이 났습니다. 이제는 그들이 제게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누군가의 기대를 저버린다는 건 내 존재의 우월함을 스스로 저버리는 거라 여겼을 테니까. (29쪽)

 

저를 이러쿵저러쿵 평가하며 제 삶에 관여했던 사람들이 딱 이랬습니다. 제 우월함을 은근히 부추기며 잘 하는 것과 부족한 것을 적당히 섞어 저를 평가했습니다. '잘 했는데, 요런 것만 좀 더 하면 되겠다' 이런 식의 말에 저는 너무나도 쉽게 넘어가곤 했습니다. 그 부족한 점을 채우기 위해 열심히 노력을 하면 그게 끝이 아니었습니다. 평가는 더 강력해지는데, 그것은 마치 움직이는 표적과 같았습니다. 행동이 따르지 않는 평가의 말은 쉽고, 그것을 채우기 위한 실제적 노력은 한계가 있기 마련이니까요.  

 

이제 누구나 기대를 저버리는 연습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기대를 저버리는 연습 없이는, 평생을, 남의 기대를 위해 자신의 인생을 쓰고 만다. 단 한 번밖에 없는 삶에 그만한 낭비도 없다. (29쪽)

 

최근에 '기대를 저버리는 연습'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연한 기회였습니다. 첫 시도는 어려웠는데, 해보니까 생각했던 것만큼 죽을지도 모르는 그런 상황은 오지 않았습니다. 요즘엔 가끔 소소하게 '기대를 저버리는 행동'을 하며 쾌감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이것은 상대의 반응을 보며 느끼는 쾌감이라기보다는 제가 제 삶의 통제권과 주도권을 찾아가면서 느끼는 자유의 느낌일거라 생각합니다. (물론 상대 반응에서 오는 고소한 마음이 아주 없지는 않다는 걸... 조금은 인정합니다.)

 

남이 날 나쁘게 생각하면 기분 나쁘고, 남이 날 좋게 생각하면 기분 좋은 건 당연하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남이 날 어떻게 생각하든 그의 기대를 충족시키고자, 그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힘을 낭비하지는 않는다는 거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자신이 못나거나 하찮은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아니까. (32쪽)

 

'모르겠습니다,' '못 하겠습니다,' '여기까지입니다',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한계를 인정하는 말은 제가 다른 사람과 그리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제가 그렇게 특별하지 않고, 우월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는 말입니다. 이런 말이 저를 깎아내리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이건 나에 대한 타인의 족쇄를 부수는 아주 강력한 주문이었습니다. 요즘엔 이 말을 적재적소에 자유롭게 씁니다. 제가 활용할 수 있는 무기가 늘어난 느낌입니다. 

 

 

 

  • 삶을 장악하라

  • 누군가의 기대를 저버리는 연습을 하라

  • '누군가의 무엇'이 아니라 '누군가'가 되어야 한다

  • 우리가 다 행복하자고 이 지랄들 하는 거 아닌가

  • 건투를 빈다

 

이 책의 핵심입니다. 책을 읽을 때 평소 총수의 어투를 알기에 마치 음성지원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툭툭 내뱉는 거친 말투에 담긴 메시지는 참으로 살갑고 따뜻합니다.

 

이 책에는 총수의 가족에 대한 이야기도 잠깐 나옵니다. 아주 특별할 것 같은 사람의 일상적인 생활, 가족... 삶이란 다 그렇게 특별하지 않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느낌이 묘합니다. 누구나 다 비슷비슷한 삶의 재료를 가지고 총수가 그렇게 특별하게 요리해낸 이유는 자신 앞에 놓인 재료를 이 사람 저 사람의 레시피를 물어물어 다 섞어찌개처럼 만들어버린 게 아니어서일 것입니다. [정면돌파 인생 매뉴얼]이라는 부제의 표현처럼 결국에 뭐가 나올지는 모르지만  자기 식으로 '정면돌파'하면 요리해나갔기 때문일 것입니다.

 

관련 글: '나는 언제 행복한 사람인가' by 김어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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