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이야기

사람의 삶이 기록이 된다는 것.. 영화 [김복동]

윤크라테스 2019. 8. 19. 09:00
나이는 구십넷,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서울에서 온 김복동..

 

사람에게는 평생 여러가지 이름표가 붙게 됩니다. 그 중에는 내가 자랑스러워 할 만한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습니다. 김복동 할머니에게는 하고 많은 이름표 중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라는 이름표가 붙었습니다. 일본군 '위안부'에 대해 세상이 어쩌고 저쩌고 해도 할머니는 스스로 모른 척 하면 그만이었습니다. 그러나 할머니는 그 이름표가 자신에게 붙는 것을 그대로 두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아픈 이름표를 붙이고 자신의 피해를 넘고, 자신과 함께 모진 고초를 겪은 분들의 피해를 넘어, 앞으로도 전쟁 상황에서 국가가 지켜줄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한 평화의 메신저가 되는 삶을 선택했습니다.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싸움을 멈추지 않기로 선택했습니다. 

 

할머니에 대한 인터뷰 중에 할머니 동생의 말씀이 기억에 남았습니다. 할머니 동생의 말씀에 의하면 할머니는 형제들 중에 인물이 제일 좋고, 제일 똑똑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랬겠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할머니는 똑똑했으니까 어린 소녀의 몸으로 일본에 돈을 벌러 갈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가족을 위해 내가 가서 돈을 벌어야겠다, 나밖에 없다'고 생각을 하고 일본행을 선택했을 것입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서 싸움도 그랬을 겁니다. '나밖에 없다, 이런 경험을 했고, 아직 살아 있고, 몸서리 쳐지도록 아프고 떠올릴 때마다 내가 죽고 또 죽는 경험을 견디며 다른 사람에게 알리고, 속은 썩어 문드러져 아프지만 대차게 소리 지르고 싸울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

 

 

 

저는 타인의 상처를 자신의 이득을 위해 이용하려는 자들을 원래부터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이 영화를 보며 그런 행동의 해악을 더욱 분명하게, 구체적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이라면 그러면 안 되는 것입니다. 정말 그러면 안 되는 것임을 분명히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영화의 마지막.. 2015년 일본과의 위안부 합의 후 할머니의 모습을 비추는 장면에서 극장 곳곳에서는 울음이 터져나왔습니다. 이 일을 처음 세상에 꺼냈고, 싸움을 시작했던 할머니들에게 이 싸움은 처음부터 크게 기대를 할 수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사실 이것은 전쟁입니다. 국가적으로 체계적이고 교묘하고 야비하게 대응하는 일본 정부에 비해 할머니들은 맨 몸, 맨 손으로 나서는 슬픈 전쟁입니다. 할머니들은 대응이 안 된다는 것을 아시면서도 하루하루 견디셨을 것입니다. 절망스러움에 죽고, 또 죽는 매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2015년 한국과 일본 정부의 합의는 할머니들에게 아주 말뚝을 박은 셈입니다. 화면으로 전해지는 절망에 바라보는 제 마음이 너무 아프고 답답했습니다.

 

그러나 다시 일어서시는 할머니... 마음이 무너지고, 더이상 앞이 보이지 않는데도 일어서셨습다. 그 장면을 보며 나는 절대로 '절망'이란 말을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흔이 넘은 나이라면 이제 인생을 편안하게 잘 마무리짓고 싶을 때입니다. 그러나 가해자들로부터 모욕 당하고, 정부로부터 평생의 노력을 배반당했습니다. 인간으로서, 지금까지 살아온 삶이 온통 부정당했다는 생각이 들었을지도 모릅니다. 사람은 마음이 깊이 상하면 살아야겠다는 의지를 다시 일으키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할머니는 다시 전쟁터로 향했습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싸움이 있습니다. 일본 정부는 처음에 우리 할머니들의 싸움을 우습게 보았을 것입니다. 연세는 많으시지, 보아하니 한국에서 체계적으로 도와주는 것 같지도 않지, 돈도 없어 보이지... 얼마나 어설프고 우습게 보였을까요? 그러다 말겠지, 흐지부지 되겠지 싶었을 겁니다. 소소한 가십거리 정도로 끝날거라 생각했을 겁니다. 그러나 그것은 세계적인 인권 전쟁이 되었습니다. 

 

이런 전쟁은 머리가 좋아서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머리가 좋다면, 계산이 빨리 돌아간다면,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하니까, 이길 수 없다면 헛수고니까 시작도 하지 않았지도 모릅니다. 만약 시작했다고 해도 빨리 그만 두는 게 이득일거라 생각하고, 적당하게 멈출 때를 기다렸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할머니들은 싸움을 시작했고, 그 싸움을 이어나갔습니다. 그리고 그 싸움이 번져나가게 되었습니다. 인간에 대한 존중, 상처에 대한 공감과 위로는 인류 보편의 가치입니다. 한 개인의 일이 아니라, 어느 힘 없는 나라 사람 몇몇의 일이 아니라, 전쟁이라는 폭력 앞에서 누구나 당할 수 있는 일임을 세계에 알렸습니다. 

 

그래서 아프지만 감동스러웠습니다. 할머니들에게는 지난 일이고 돌아가시고 나면 잊혀질지도 모를 일이지만, 앞으로의 세대가 절대 다시 겪어서는 안된다는 그 마음이 전해졌습니다. 자신들을 위한 싸움이 아닌 다음 세대를 위한 싸움인 것입니다. 

 

우리는 대부분 약한 존재입니다. 세상의 폭력 앞에서 언제든 피해자가 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우리를 염려하고 지켜주려 애쓰는 분들은 오히려 그런 아픔을 먼저 겪었거나, 아직 그 아픔 안에 있는 약자들입니다. 이런 상황에 대해 한편으로는 아이러니를 느끼며, 또 다른 한편으로는 공감과 연대의 중요성을 다시 깨닫습니다. 

 

영화 [김복동]이 연일 화제입니다. 할머니의 삶이 메시지가 되어 더 크게 번지고 있습니다. '김복동'은 더이상 한낱 힘 없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가 아닙니다. 한 사람의 삶이 한 편의 영화로 기록되고, 그것을 보는 사람에게 감동을 전하는 모습에서 '의미있는 삶'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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