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대학원생에게 일상이 있는가?

윤크라테스 2020. 12. 6. 10:17

피에르 쌍소의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

책장 한켠에 오랜 기간 꽂혀 있던 이 책을 드디어 꺼내 읽고 있습니다. 

 

요즘 대학원생으로서의 일상에 대한 고민 중이어서인지 다음 구절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나는 그런 권태에 긍정적인 색조를 부여해야 한다는 제안에 기꺼이 동의한다. (...) 따분한 일상 속에는 항상 만나는 이웃, 해마다 찾아오는 사계절, 한 주일을 마감하는 매주 일요일, 날마다 뜨는 태양들에 섬세하게 집중할 수 있는 조심스러움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피에르 쌍소,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 p.105]

 

대학원생이라는 신분이 왠지 모르게 어떤 단계로 가기 위한 임시적 신분의 느낌이 있었는데, 직장 생활까지 병행하다 보니 그 임시적 느낌이 훨씬 강해졌다고나 할까요. 그래서인지 항상 바쁜 중에 일상을 잃어버린 것 같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들었던 질문. '나에게 일상은 무엇일까?'

 

그와 함께 나만의 일상을 구축하고 싶다는 욕구가 생겼습니다. 그게 어떤 모습일지는 몰라도 그런 게 있다면 훨씬 안정감과 평안함을 느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권태
따분함
반복

 

이런 것들이 일상의 한 모습인데, 지금까지 멀리했던 것들입니다. 항상 바빠야 하고, 일을 많이 해치워야 한다는 강박이 저를 동동거리게 하고 제가 그토록 원했던 일상에서 점점 멀어지게 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그러지 말자' 합니다.

 

아주 긍정적인 경우엔, 이런 시골에서의 따분한 하루하루는 멜랑꼴리이자 영혼의 황홀한 음악이 될 수 있었다. 반면 삶에 대한 무기력증은 삶이 싫어진 것이라기보다는 삶의 풍취를 잃어버린 것이다. [피에르 쌍소,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 p.106]

 

저는 일상과 무기력증을 혼동하고 있었습니다. 일상의 안정감 있는 반복 등을 무기력증이라 생각한 거죠. 그런데 무기력증은 오히려 바쁨에서 올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너무 바쁘고 정신이 없고, 그러게 에너지를 모두 써버리면 지쳐서 '삶의 풍취'를 느낄 힘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게 되니까요.

 

대학원생으로서의 일상을 누린다는 것은 제 신분에 상관 없이 그날 그날의 제 시간을 누리는 것입니다. 바쁘면 바쁜대로, 나름대로 일상을 정리하는 것. 요즘과 같이 변화가 당연한 세상에서 변화를 당연히 여기면서 나중을 기다리지 않는 것. 일상에 불필요한 바쁨을 추가하지 않는 것..

 

일상을 관리하고 영위하는 책임은 오롯이 저 자신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