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탄의 노래에 자주 사용되는 상징이 있습니다. '날개'는 그 중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상징 중 하나입니다. 이 날개라는 게 노래마다 다양하게 나와서 참 의미심장하게 다가옵니다. 그래서 한번 깊이 생각해 봤습니다. 날개의 의미를요.
방탄 노래에서 발견한 '날개'의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 날개를 다는 주체는 내가 아닌 상대입니다.
- 날개는 하늘을 날게 합니다.
- 날개는 변합니다.
얼핏 보면 단순해 보이는 상징이지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많은 것을 담고 있습니다. 그런 것들을 새롭게 떠올릴 때마다 방탄의 생각의 깊이와 폭에 더욱 감동하게 합니다.
"날개를 다는 주체는 내가 아닌 상대입니다."
방탄에게 날개는 자신들의 노력에 대한 성취를 의미합니다.
보통 사람들은 어떤 성취를 이루면 그것이 자기가 잘 해서 그렇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성취가 온전히 자신의 소유라 여기기 때문에, 성취가 크면 클수록 그런 성취를 이룬 자신을 다른 사람과 차별화하려고 시도합니다. '자신의 과거 지우기'가 대표적인 시도입니다.
이들은 자신이 타고 올라갔던 사다리를 꺽어버리고, 자신은 원래 특별한 사람이었다고 착각합니다. 이들은 미숙했던 과거의 자신을 부끄럽게 여기고 부정합니다. 자신의 미숙했던 과거, 실수, 실패 등은 융 심리학에서 말하는 '그림자'가 되는 건데, 이것을 인정하지 못합니다. 현재 잘나보이는 자신, 그리고 앞으로 더 큰 성취를 이룰 자신만이 '온전한 자신'으로 인정하려 합니다. 이들은 '페르소나'를 자신의 본질과 동일화하기 때문에 그것이 손상되는 것은 참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남들 앞에 보여지는 근사한 자신의 모습을 지키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하고, 어떤 위험이든 감수할 용의가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이들은 앞으로 나아갈수록 성취해야 할 자신(미래의 목표)과 지워버려야 할 자신(과거의 자신)만 남습니다. 이들이 '날개'를 달고 향할 방향은 정해져 있습니다. 바로 '태양'이죠. 그리고 그 결말은 보통 정해져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이카루스의 날개' 이야기는 그들에 대한 예언입니다.
방탄은 자신들의 성취가 어디에서 왔는지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습니다. 바로 아미들이 자신들의 존재를 알아봐주고, 자신들의 예술을 좋아해줬기 때문임을 정말 잘 알고 있습니다. 그 마음이 여러 노래 곳곳에 표현되고 있죠. 아미가 자신들을 알아봐주었다, 아미가 자신들에게 날개를 달아주었다는 표현은 아미를 향한 고마움과 함께, 성취의 근원이 어디인지를 잊지 말자는 자기 다짐이기도 합니다. 특히 [이사]의 경우 자신들의 다짐을 '자신들의 과거를 하나도 잊지 말고 꼭꼭 다 기억하자'는 식으로 표현하고 있었고, 그 점이 매우 인상 깊었습니다.
'날개'의 장착 원리를 아는 방탄은 그래서 계속 아미에게 그 원리를 이야기합니다. 이번엔 방탄이 아미에게 날개를 달아주겠다는 것이고, 이 원리를 아는 사람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날개를 달아줄 수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 사람은 사회적 존재라 서로에 대한 인정과 사랑이 생존을 위해서, 행복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합니다. '날개를 달아준다'는 의미는 이런 인정과 사랑을 의미하는 것을 누구나 다 알고 있죠. 저는 [Magic shop]에서 '날 찾아냈잖아, 날 알아봤잖아'라는 구절에서 특히 큰 울림이 있었습니다. 그게 바로 서로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방법이었거든요.
"날개는 하늘을 날게 합니다"
방탄에게 '날개'는 새로운 시도를 위한 수단이기도 합니다.
날개를 통해 어디든 날 수 있죠. 날개가 크면 클수록, 강하면 강할수록 갈 수 있는 넓이와 폭이 달라집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날개가 크면 클수록 할 수 있는 일도 더 다양하고 많아지고, 그 영향력도 더 커집니다. 이럴 때 사람들은 그렇게 크고 멋진 날개를 가지는데 더 집중하게 되기도 합니다. 날개 자체가 목적이 되는거죠. 그래서 더 큰 날개, 더 멋진 날개를 가지려고 기를 씁니다. 그러는 과정에서 자신이 날개를 가지려 했던 원래 의도는 잊어버리는 경우가 생기죠.
방탄은 자신의 날개가 수단임을 잘 알고 있는 듯 합니다. 자신들의 정체성은 예술가이고, 자신들이 원하는 것은 자신들의 노래와 퍼포먼스를 마음껏 하는 것임을 계속 확인하고 또 확인힙니다. 이번 곡 [Dionysus]에서도 자신들이 예술가임을 천명하죠. 방탄의 앨범에는 항상 자신들의 정체성에 대한 확인이 있어요. 왜냐하면 사람의 마음은 변하는지라 자꾸 확인하고 각인하지 않으면 흐릿해지기 마련이거든요. 그들은 이런 사람의 마음을 잘 알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나는 누구지, 내게 의미 있는 것은 무엇이지, 난 무엇을 위해 이것을 하지, 이런 질문들을 계속해서 하고 있는거죠. 이 과정은 수단과 목적을 분명히 분리하고, 수단을 수단으로서 인식하고 다른 길에 빠지지 않게 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날개는 변합니다."
세상 모든 것은 다 변합니다. 이렇게 말하니 뭔가 도 닦는 이야기 같기도 하네요. 하지만 사실입니다. 방탄의 날개는 지금까지 변해왔고, 앞으로도 변할 것입니다. 날개가 변한다는 의미는 강해졌다가 약해졌다가를 반복한다는 의미입니다. 날개가 변할 것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면 자신의 날개의 상태를 계속 확인하게 될 겁니다. 만약 더 크고 강해졌다면 거기에 맞게 더 큰 일을 시도해 볼 수 있겠지요. 만약 다소 약해졌다면 좀 작은 일을 해야 할 겁니다.
사람들은 크고 좋은 것은 영원하기를 바라고, 약해지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칩니다. 변하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변하는 것을 변하지 않게 하려고 애쓰다 보면 문제가 발생하곤 합니다. 그런 예들을 지금도 많이 접하고 있죠.
[방탄회식]에서 슈가가 미국에서 상을 타고 샤워를 하다가 너무 두려워서 울었다는 이야기를 한 적 있어요. 추락하면 어떻게 될지 너무 두렵다는 거죠. 그러다가 너무나 멋진 말을 했습니다. 자신은 "추락하지 않고 착륙하겠다"는 말입니다. '추락'과 '착륙'은 모두 땅으로 내려오는 것이지만 그 의미가 완전히 다릅니다. 추락은 자신의 날개 상태를 제대로 모르고, 자신의 생각 속 날개로 인식했다는 의미입니다. 반대로 착륙은 자신의 날개 상태를 잘 파악하고 있다는 의미죠. 추락하는 날개는 진짜 자신의 날개가 아닌 것이고, 착륙하는 날개는 비록 약해졌을지언정 진짜 자신의 날개입니다. 지금은 좀 약해져서 착륙했지만, 힘이 쌓이면 다시 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약해졌던 날개도 언제든 다시 강해질 수 있을테니까요.
날개가 변하는 것은 날개를 내가 단 것이 아니라는 것과도 통합니다. 나를 인정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에 의해 달게 된 날개이지만, 이 날개를 조종할 수 있는 권한은 감사하게도 내게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 날개의 상태는 내가 계속 살펴봐야 합니다. 이 날개가 언제까지 주어질지도 미지수입니다.
[작은 것들을 위한 시]의 RM의 랩에서 "Let me fly"라고 합니다. "I will fly"가 아니라 "Let me fly"입니다. 이것은 성공과 성취란 내가 하는 게 아니라 주어지는 것임을 의미하는 게 아닐까요? 내가 기를 쓰고 가지겠다고 하는 게 아니라, 난 여기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하는 것이고, 성공과 성취는 내게 주어지기도 하고 아니기도 할 수 있음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 자신들에게 주어진 성공과 성취는 언제든 떠날수도 있음을 받아들이고 있음을 의미할 것입니다.
CBS와의 인터뷰에서 RM이 '방탄은 지금을 즐긴다'는 말도 같은 맥락일 것입니다. 그들은 계속 변하는 날개에 대해 언제 약해질지, 언제 없어질지 미리 염려하고 걱정하지 않습니다. 자신들이 지금 할 수 있는 노래와 춤을 하고, 자신들이 지금 가지고 있는 날개에 감사하고, 자신들에게 날개를 달아준 아미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충분히 전하는 것이죠. 그들은 자신들이 누구인지, 무엇이 자신들의 삶에 의미가 있는지, 지금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어요. 그리고 그것은 그들의 날개로 우리에게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 관련 게시글: 인터뷰로 감동 주는 감동소년단 - BTS의 CBS 인터뷰
- 관련 게시글: 그들이 어떤지 정말 궁금해? 그럼 확인해.. [방탄회식]
- 방탄회식 유튜브: https://youtu.be/K4Melso7MP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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