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이야기

다음 '쓰임'을 위해 '쓸모'를 닦는다.. 탁현민 특강을 듣고

윤크라테스 2019. 5. 16. 09:31

탁현민씨의 특강을 들었습니다. 강연 전 학생들이 작성한 질문에 대한 답을 하는 형식이었습니다. 그 분의 기사를 읽고, 책을 읽어서 그 분이 직접 말을 한다면 어떻게 할지 궁금했습니다. 역시 현장에서 직접 어떤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직접 일대일의 만남이 아닐지라도 감흥이 달랐습니다. 같은 공간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전해지는 무엇인가가 있었습니다. 

 

40대 후반을 바라보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도 역시 자신의 길을 가고 있는 중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20~30대 학생들이나 자신이 성취의 지점에 이르지 못했다고 여기는 분들은 그가 이미 도달했다고 생각하고 그를 바라볼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제가 바라본 그에 대한 느낌은 이랬습니다. 그는 여전히 그는 길을 가고 있고, 그의 앞에는 어떤 길이 펼쳐질지 모르는 나와 같은 사람이라는 느낌이랄까요? 

 

인상 깊었던 대목이 많았지만, 그 중에서도 내게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쓸모'와 '쓰임'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그는 '쓸모'에 대해 '내가 나를 개발하는 것'으로 '내가 어쩔 수 있는 영역'이었습니다. 그에 반해 '쓰임'은 '다소 운명적'이어서 '기다림이 필요'하며 '내가 어쩌지 못하는 영역'이었습니다. 그가 생각하기에 자신이 아직 쓰이지 못할 때 할 수 있는 일은 자신의 '쓰임'을 기다리면서 '쓸모'를 개발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만약 '쓸모'와 '쓰임'이 절묘하게 맞아 떨어졌을 때는 꿈같은 일이 벌어지는데.. 그의 정확한 워딩은 기억이 안 나지만, 이 말을 할 때 뭐라 말할 수 없는 희열이 전해졌습니다. 그가 말하길.. 가장 경계해야 할 일은 '쓸모'가 없으면서 과분하게 쓰이는 것이라 했습니다. 왜냐하면 언젠가 본전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강연 중에 자신이 기획한 행사에 대해 언급하는 과정에서 얼핏얼핏 느껴지는 것들이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일에 대해 진지하고,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것 같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자신의 삶에 대해 진지하고, 또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 것 같았습니다. 

 

가장 공감되었던 사례는 현충일 행사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정해진 프로토콜 안에서 만들어야 하는 행사인데, 어떻게 사람들에게 감동을 전해줄 수 있을까 고민이 많았다고 합니다. 현충원 현장을 방문하여 쭉 묘비를 보는데, 문득 묘비 주인인 중사의 특이한 이름이 눈에 띄었다고 합니다. 그 묘비를 찬찬히 보는데, 그의 나이 20세(혹은 21세? 정확히 기억이 안 나네요. ㅠㅠ).. 중사의 나이에서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감정에 빠졌다고 합니다. 그의 묘비에는 더이상 연고가 없음을 의미하는 조화가 꽃혀 있었다고 합니다.

 

20대의 청년이 나라가 불러서 나간 전쟁터에서 1년만에 사망을 했습니다. 그를 떠나보낸 부모도 세월이 흘러 더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닙니다. 이제 한국에서 그를 기억해줄 사람은 더 이상 없습니다. 그런 그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렇게 해서 떠오른 생각이 '국가가 당신을 기억하겠습니다'라는 컨셉이었다고 합니다. 그는 그저 수많은 회색 빛깔 묘비 중 하나였던 한 젊은이를 20대 청년으로 다시 되살렸습니다. 저는 이 에피소드를 들으면서 눈물이 났습니다. 

 

 

 

 

 

 

저는 이 에피소드에서 3가지를 배웠습니다. 

 

첫째, 작업을 하는 사람은 현장에 있어야 한다는 성실성입니다. 

아무리 경력이 많고, 아이디어가 많다 하더라도 현장엘 가야 얻을 수 있는 게 있습니다. 이것은 성실성입니다. 어떤 일이라도 처음부터 시작한다는 마음이 필요하고, 그 마음의 반복은 바로 성실성입니다.

 

둘째, 반복되는 것을 다르게 하고 싶어하는 마음입니다.

반복되는 것을 다르게 하고 싶어하는 마음은 자신의 일을 대하는 자세와 관련 있습니다. 그렇게 하고 싶어 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평소에 그렇게 하던 태도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뭐든 쉽게 편하게 가겠다는 마음이 아니라, 의미 있게 제대로 하겠다는 마음입니다. 그리고 이런 마음이면 기회도 오게 되는 것 같습니다. 

 

셋째, 작업에 관련된 대상을 바라보는 시각입니다.

우리가 하는 일 중에는 사람에 관련된 일이 많습니다. 직접적이 아니라 간접적이라도 말입니다. 계속 수많은 사람을 일의 대상으로 대하다보면 사람에 대한 감성과 감각이 무뎌지게 마련입니다. 그의 에피소드를 들으며 그렇게 무뎌지기 쉬운 감성과 감각을 계속 깨우고 있음이 느껴졌습니다. 그 과정이 얼마나 피곤하고 또 힘든 일일지 아주 쪼끔은 짐작이 됩니다. 감각이 세밀하고 살아있을수록 자신이 좋던싫던 많은 자극을 받아들이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 과정에서 상처도 많이 받겠지요..

 

90분+a의 강연시간이 제게는 매우 알찬 시간이었습니다. 그는 앞으로도 언제일지 모를 '쓰임'을 위해 앞으로도 자신의 '쓸모'를 닦아나가겠다고 합니다. 자신이 과거의 실수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고, 모쪼록 앞으로는 큰 실수를 안하고 살았으면 한다는 말로 마무리를 했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그를 보며 자신이 예전엔 알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던 영역에 대해 이해의 폭을 넓혀가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성장하는 한 사람을 보는 것은 그 자체로 큰 배움입니다. 

 

강연의 말미에 질문할 시간이 있었는데, 그 때는 강연에 푹 빠져 있느라 아무 생각이 나질 않았습니다. 집에 와서 곰곰히 생각하고, 다음 날이 되니 질문이 생각났습니다. 너무 아쉬웠죠.. 하지만 언젠가 질문을 하게 될 날을 기다립니다. 기회가 올거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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