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무엇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할 것인가..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by 야마구치 슈

윤크라테스 2019. 5. 5. 10:21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by 야마구치 슈

 

책을 계속 읽다 보니 나에게 맞는 책이 있고 그렇지 않은 책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제 경우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책이 더 맞는 것 같습니다. 자신이 깨달은 것, 자신이 경험한 것 등을 쓴 책은 몰입이 더 잘 되고, 더 잘 읽힙니다. 반면에, 다른 사람의 책을 정리한 책은 잘 맞지 않네요. 단,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과정에서 다른 사람의 책이나 이야기 인용하는 것은 괜찮은 듯 합니다. 이번 책은 여러 철학자들의 책이나 이야기를 엮은 방식이어서, 제가 선호하는 종류의 책이 아니었습니다. 잘 읽히지는 않았지만, 읽으면서 생각하고 새기고 싶은 내용이 있어서 정리해봤습니다.

 

 

제게 가장 인상 깊었던 챕터는 이것이었습니다.

 

악의가 없어도 누구나 악인이 될 수 있다 - 악의 평범성 by 한나 아렌트

 

* 한나 아렌트:

2차 세계대전 홀로코스트 전범인 아돌프 아이히만이 이스라엘 사법부에 의해 받은 재판을 기록한 책인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의 저자. 아이히만을 설명하기 위해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을 제시. (출처: 위키백과 내용 편집)

 

내용 중에서 다음의 글이 핵심인 듯 했고, 또한 제게도 가장 인상 깊은 대목이기도 했습니다.

 

"악이란 시스템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보통 악이라는 것은 악을 의도한 주체가 능동적으로 저지르는 행동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아렌트는 오히려 악을 의도하지 않고 수동적으로 저지르는 데서 악의 본질이 있다고 보았다. (100쪽)

 

셀수 없을 정도로 많은 유대인을 죽인, 그리고 효과적(?)으로 죽일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했던 아돌프 아이히만. 전범 재판에서 사람들이 기대했던 아이히만의 모습은 누가 봐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악마의 모습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 사람들이 마주한 그의 모습은 노쇠하고 평범한 한 남자였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많은 충격과 혼란에 빠졌을 것입니다.  

 

 

 

 

 

이런 비슷한 상황은 저희도 종종 경험합니다. 여기서 나오는 것처럼 극악한 사건은 아닐지라도, 저희에게 개인적으로 매우 못되게 굴거나 괴롭힘을 주는 사람인데, 내게는 그가 악마인데, 어떨 때 그 사람은 너무나 평범해 보입니다. 심지어 다른 사람에게는 친절하기까지 합니다. 이럴 때 우리는 다음과 같은 혼란에 빠집니다.

 

내가 그 사람을 잘못 봤나?

그 사람이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다르게 행동하나?

아니면 내가 뭔가를 잘못했나?

이러한 불일치는 어디서 오는거지? 

 

이러한 혼란과 불일치는 자신을 더 큰 혼란과 괴로움에 빠지게 합니다. 그렇다면 왜 이런 상황들이 발생할까요? 어디서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요? 바로 '생각하기'입니다. 저자는 이와 관련하여 '세상에 존재하는 두 가지 삶의 방식 (101쪽)'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1. 현행 제도를 부여된 대로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어떻게 잘해 나갈까에 사고와 행동을 집중하는 방식
  2. 현행 제도를 부여된 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제도 자체를 더 나은 것으로 바꾸어 가는 데 사고와 행동을 집중하는 방식

저자는 현행 제도를 받아들이는 것과 바꾸는 것에 대해 구분을 하였습니다. 제 관점에서는 다소 이분법적으로 보여서.. 저는 이렇게 생각해 보았습니다. 바로 생각의 '대상'과 '목적'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이익과 소유, 욕망을 극대화할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가치 있는 삶, 삶의 의미 등에 대해 생각합니다. 즉 누구나 생각은 합니다. 다만 무엇에 대해, 어떤 목적으로 생각하는지가 모두 다를 뿐입니다. 

 

사람들에게 무턱대고 생각하라고, 사고하라고 하는 것은 무리가 있습니다. 너는 생각을 한다, 안 한다 이렇게 판단하고 말하는 것도 어떤 측면에서는 편견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앞에서 말했듯이 누구나 생각은 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이 하는 생각이 자신을 성장하게 하고 자신을 의미있게 하는 방법을 알려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가 지금 어떤 생각을 어떤 목적에서 하고 있는지를 알고, 그 사람에 맞게 생각의 목적과 방향성, 방법에 대해 말해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쉬운 일은 아닙니다. 사람들은 계속 생각하던 대상에 대해 생각하고, 계속 생각하던 방식대로 생각합니다. 생각하는 방식도 또한 하나의 패턴이고, 습관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생각이 타인에 의해 바뀔수가 없고, 순식간에 확 바뀔수도 없습니다. 생각하는 사람 자신이 어떤 계기를 맞이해서 자발적으로 바꾸겠다는 결심을 해야 하고, 그리고 서서히 꾸준히 바꾸어가야 합니다. 옆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상대에 대한 관심과 인내를 가지고 지속적으로 좋은 영향력을 미치며 기다리는 것입니다. 즉, 상대를 사랑해야 가능합니다. 

 

 

 

 

 

평범한 인간이야말로 극도의 악이 될 수 있다. 스스로 생각하기를 포기한 사람은 누구나 아이히만처럼 될 가능성이 있다. 그 가능성에 관해 생각하는 것은 두려운 일일지 모르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그 가능성을 분명히 인식하고 사고하기를 멈추면 안 된다고 아렌트는 호소했다. (101쪽)

 

저자는 누구나 극도의 악이 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저는 '누구나 악의 요소를 가지고 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각자가 할 수 있는 것은 가장 먼저 '의도적으로 악의 요소를 발현하지 않는 것'입니다. 즉, 누군가를 의도적으로 불행하게 만들거나 고통을 주지 않는 것, 그리고 고통받는 사람을 조롱하지 않는 것 등이 있을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모르는 상태에서 악의 요소를 발현하지 않도록 유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참 어려운 일입니다. 미리 알 수 있다면 좋겠지만, 몰라서 저지를 수 있는 것들도 있기 때문입니다. 모르고 저질렀을 때에는 알아차리고, 반성하고, 다음 번에는 그렇게 하지 않도록 조심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조금 더 유념해야겠지요. 모르고 저지르는 행위가 없는지에 대해서요.

 

이것은 어쩌면 각자 자신의 삶의 가치와 의미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삶의 가치와 의미를 성장하는 것, 더 의미 있는 삶을 사는 것, 더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라면 삶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저지르는 악행은 점점 줄어들게 될 것 같습니다. 

 

저에게나 사회적으로 악행을 저지른 사람을 볼 때에 그 사람을 좋다, 나쁘다라는 방식으로 나누기보다는 그 사람의 생각에 대해 고려해보면 어떨까 합니다. 그렇게 하면 우리가 보는 그 사람의 행위는 그가 무엇을 가치있게 여기고 추구하는지에 대한 단서가 될 것입니다. 그 사람을 좋다, 나쁘다라고 나누어 결론을 내리면 나중에 그 사람이 다른 방식의 행동을 했을 때 헷갈립니다. 그러나 그 사람의 가치와 삶의 의미를 유추하여 그 사람을 바라본다면 사소한 행위에 따른 혼란은 조금 덜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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