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그의 일상을 보다.. [걷는 사람, 하정우] by 하정우

윤크라테스 2019. 5. 19. 11:53

[걷는 사람, 하정우] by 하정우

 

이 책을 읽는 내내 들었던 생각은 이것이었습니다.

"일상을 무엇으로 채우는가가 바로 그 사람이다."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진 24시간은 각자가 어떻게 쓰던지 간에 흘러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 시간은 어떻게든, 무엇으로든 채워지게 되어 있습니다. 매 순간 의도해서 채울 순 없지만, 내 일상이라는 쇼핑카트에는 24시간이 지나면 뭔가가 가득 들어차 있습니다. 그것이 한 달이 되고 일년이 되고 또 평생이 되면 어마어마한 양의 무엇인가가 쌓이게 되겠지요. 이게 정체성이 되는 과정이라 생각합니다. 

 

 

삶이란 끝나는 순간까지 진행형입니다. 이 책을 읽으며 한 사람이 '사는 모습', 심지어 잘 살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생생하게 경험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책을 처음 읽는 순간부터 마지막 덮을 때까지 말입니다. 

 

그의 프로필은 이렇습니다.

 

배우, 영화감독, 영화제작자.
그림 그리는 사람.
그리고, 걷는 사람.

 

사람들은 자신의 성취, 성공을 '무엇이 되는 것, 무엇을 갖는 것'으로 보통 측정합니다. 하정우씨의 프로필에서 보자면 첫째 줄에 있는 '배우, 영화감독, 영화제작자'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삶의 가치를 '무엇을 하는 것'에 두는 것으로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그의 뒤에 있는 자기 소개인 '그림 그리는 사람, 걷는 사람'에 더 관심이 갔습니다. 이것은 진행형이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오랫동안 연기하고 영화를 만들고 그림을 그리고 싶다. (120쪽)

 

저는 그의 정체성을 여기서 이렇게 읽었습니다. 그의 정체성은 그가 오랫동안 하고 싶은 일로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다음의 구절도 같은 맥락에서 참 좋았습니다. 

 

누구보다 좋은 배우가 되고 싶어하고, 또 좋은 사람으로 살고 싶은 친구들, 후배들과 함께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졌다. 그들이 얼마나 오랫동안 간절하게 연기와 삶에 대한 고민들을 이어왔는지 잘 알고 있었으니까. (205쪽)

 

세상에 이런 분들이 드러나지는 않지만 곳곳에 계시다는 것이 매우 반갑고도 고마웠습니다. 저도 또한 좋은 연구자가 되고 싶고, 또 좋은 사람이 되고 싶으니까요. 그래서 항상 고민하고 또 고민하고 있으니까요.

 

곳곳에서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해 더 잘 하고 싶고, 또한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노력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참 기분이 좋습니다. 이 분들 덕에 우리 사회가 조금씩 나아지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갖습니다. 그리고 그런 분들이 더 주목받기를 바랍니다.  

 

 

 

 

 

나는 예술에서 시간을 견디는 일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싶다. (120쪽)

 

요즘 어디서든 '견딘다'는 말을 많이 발견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당분간 제 일상의 과제는 '견디는 일'인듯 합니다.

 

오디션이 번개 같은 찰나의 순간에 결정된다면, 나는 그 찰나의 순간을 어떻게든 잡아채고 싶었다. 오디션은 삼 분 안에 결정되는 잔혹한 경쟁이지만, 보석은 그 짧은 시간에도 스스로 빛을 발한다고 믿었다. (284쪽)

배우란 분명 선택받는 직업이지만, 그 선택받을 수 있는 무대까지 걸어가는 것은 내 두 다리로 할 수 있다고 믿었다. (285쪽)

 

이 구절은 하정우씨가 후배 신인배우들을 보며 자신이 신인배우로서 오디션에서 선택되기까지의 심경을 떠올린 것입니다. 이 글을 보며 '견디는 일'은 삶을 살아가는 동안 계속해야 하는 일인가 보다.. 이렇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 구절처럼 신인배우로서 처음에 발탁되기까지 견디고 기다려야 합니다. 두번, 세번 발탁되어 점차 알려진 후에는 배우로서의 일상을 견뎌야 합니다.

 

이것은 다른 일을 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이 어떤 전문 분야에 발탁되기까지, 즉 (탁현민 씨의 말을 빌자면..) '쓰임'이 있을 때까지 자신의 '쓸모'를 개발하며 그 시간을 견뎌야 합니다. 그 쓰임이 끝나고 자유인이 되면 다음 쓰임을 위해 또 자신의 쓸모를 개발하며 견뎌야 합니다.

 

어쩌면 삶이란 '쓰임'의 기간과 쓸모를 닦는 '견딤'이라는 과정의 반복이 아닌가 합니다. 그렇다면 이제 견디는 것을 바라보는 시각을 달리 해야겠습니다. 쓰임을 중심으로 생각했는데, 쓰임의 기간은 잠깐인 듯 합니다. 오히려 쓸모를 닦는 견딤의 과정이 더 많고 더 중심인 듯 합니다. 견디는 과정을 더 일상적이고 더 당연하게 봐야겠습니다. 

 

   쓸모와 쓰임에 대한 이야기..  다음 '쓰임'을 위해 '쓸모'를 닦는다.. 탁현민 특강을 듣고

 

 

내가 만난 노력의 장인들 - 노력의 밀도를 생각한다.

 

저는 이 제목 자체가 좋았습니다. 저는 '노력'이라는 단어를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이 장에는 박찬욱 감독의 예를 들며, '노력의 방향과 방법'이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하정우씨의 말대로 노력을 한다는 자체에 의미를 두느라 '노력의 방향과 방법'에까지 생각이 미치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했던 노력의 차원을 높여주는 말이었습니다.

 

엄청난 강도와 밀도로 차원이 다른 노력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날 새로운 날들이 기다려진다. (286쪽)

 

이 구절을 읽으며 저도 마음이 설레였습니다. 저도 이런 분들을 앞으로도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이 책의 제목은 '걷는 사람, 하정우'입니다. 저는 여기서 '사람'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배우도 아니고, 영화감독도 아니고, 영화제작자도 아닙니다. 즉 어떤 역할이 아닌 '사람' 하정우씨가 자신이 어떤 사람이고, 무엇을 어떤 마음으로 일상을 채워나가고, 자신의 삶을 어떻게 인식하고 살아가는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책의 말미에는 그 내용을 다시, 더 찐하게 보여줍니다. 

 

삶은 그냥 살아나가는 것이다. 건강하게, 열심히 걸어나가는 것이 우리가 삶에서 해볼 수 있는 전부일지도 모른다. (291쪽)

 

삶은 그냥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만나는 다양한 평가, 내가 한 노력과 기대와 어긋나는 결과들, 사건과 사고들.. 그런 것들로 인해 받게 되는 타격은 실패와 슬럼프라는 이름으로 불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것은 또한 견디는 일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실패한다. 넘어지고 쓰러지고 타인의 평가가 내 기대에 털끝만큼도 못 미쳐 어리둥절한다. 그러나 그때마다 나는 생각한다.
'어차피 길게 갈 일'이라고. 그리고 끝내 어떤 식으로든 잘될 것이라고.
(...) 일희일비 전전긍긍하며 휘둘리기보다는 우직하게 걸어서 끝끝내 내가 닿고자 하는 지점에 가는 것. 그것이 내겐 소중하다. (231쪽)

 

계속 가기 위해, 그리고 견디기 위해 가장 필요한 일이자 최고의 전략은 '일상의 소소한 행위'입니다. 하정우씨가 일상의 소소한 행위를 소중히 여기는 것이 참 좋습니다. 꾸준히 제 갈길 가기 위해 자신의 주변을 살피고 또 살피는 세심함에서 편안함과 안정감이 느껴집니다. 

 

결국 그 늪에서 얼만큼 빨리 탈출하느냐, 언제 괜찮아지느냐, 과연 회복할 수 있느냐가 인생의 과제일 것이다. 나는 내가 어떤 상황에서든 지속하는 걷기, 직접 요리해서 밥 먹기 같은 일상의 소소한 행위가 나를 이 늪에서 건져내준다고 믿는다. (292쪽)

 

그의 글은 짧고 간결합니다. 그리고 재밌습니다. 이렇게 살아야 한다, 어떻게 해야 한다.. 이런 설득이 전혀 없습니다. 웃으면서 읽다 보면 어느새 끝이고, 기분이 좋아지고 행복해지는 책입니다. 

 

사는 게 뭘까? 무엇을 추구해야 할까? 이런 생각이 든다거나, 갑자기 허무하거나 공허함이 드는 분들, 자신의 일상의 가치를 찾고 싶으신 분들께 이 책을 권합니다. 

 

마지막으로 그의 기도를 함께 합니다.

 

나는 기도한다. 내가 앞으로도 계속 걸어나가는 사람이기를. 어떤 상황에서도 한 발 더 내딛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기를. (292쪽)

 

나와 당신 또한 그러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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